


1980년대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황금기에 등장한 '우주대제 가시그마'는 전형적인 슈퍼로봇물의 외형 아래 의외로 깊은 서사를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공내왕, 해명왕, 육진왕 세 대의 로봇이 갓시그마로 합체하는 화려한 설정과 함께, 지구와 엘더성의 갈등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그리지 않은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특히 적 사령관 테라의 반전은 80년대 애니메이션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이었습니다.
1. 2050년 우주 식민지 시대와 시간여행의 비밀
가시그마의 배경은 2050년 인류가 목성을 중심으로 한 콜로니 개발에 성공하고 10광년 이상의 광활한 우주 식민지를 개발하는 시대입니다. 트리니티 시티에서 열린 로봇 신제품 발표회에서 공내왕, 해명왕, 육진왕이라는 세 대의 로봇이 공개되는 순간, 엘더 성인들의 기습 공격이 시작됩니다. 주인공 토시아는 급박한 상황에서 1호기 공내왕에 탑승하게 되고, 박사의 조수연구원이었던 주리는 해명왕으로 그를 지원합니다. 이오콜로니를 침공한 엘더군은 3호기 육진왕의 파일럿이 될 키라켄의 고향을 파괴하며 그에게 깊은 복수심을 심어줍니다.
작품의 핵심 반전은 엘더군의 최고 사령관 테라가 사실 2300년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엘더성은 우주로 끝없이 진출하는 지구인들에게 공격받는 상태였고, 엘더 중앙군의 테라와 그의 연인 리라는 최전선에서 지구군과 전투를 벌이다 리라가 전사하게 됩니다. 리라는 죽기 직전 자신의 영혼을 테라의 육체에 옮겨 테라이자 리라가 되었고, 이후 엘더성은 지구인들의 트리니티 에너지를 이용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이 에너지의 비밀과 약점을 알기 위해 테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여행 설정은 단순한 로봇 배틀물을 넘어 SF적 깊이를 더해주며, 지구인이 무조건 선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2. 테라의 비극적 서사와 캐릭터의 입체성
테라라는 캐릭터는 가시그마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냉혹한 적 사령관으로 등장하지만, 그녀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 캐릭터를 바라보게 됩니다. 테라는 신비로운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리라의 영혼이 테라의 육체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파이 커플을 잠입시켜 트리니티 에너지 정보를 캐려 하지만 실패하고, 이들의 소지품을 통해 헤이하치 박사는 테라가 300년 후 미래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테라의 비극은 가간이 총사령관으로 취임하면서 더욱 심화됩니다. 가간은 테라를 반역자로 몰아 죽이려 하고, 테라의 충실한 부하였던 지라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죽이겠다며 가사상태로 만들 수 있는 침을 이용해 테라를 탈출시킵니다. 추격대의 총을 맞고 쓰러지는 지라의 희생으로 테라는 혼자 남게 되고, 이후 이오에 남아있던 지구 측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협력 관계를 맺습니다. 토시아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테라는 말합니다. "엘더성도 트리니티 에너지를 개발하고 있었지만 끝내 실패했고, 대신 타임머신 개발은 성공했습니다." 토시아는 지구인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할 리 없다며,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자신이 나서서 지구인들을 막아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장면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한 전쟁의 본질을 보여주는 핵심 대목입니다.
3. 세 대 합체로봇 갓시그마의 혁신성
가시그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세 대의 이족 보행형 로봇이 합체해 또 다른 궁극체가 된다는 혁신적인 설정입니다. 공내왕, 해명왕, 육진왕은 각각 독자적인 전투력을 가지고 있지만, 헤이하치 박사가 개발한 트리니티 에너지를 이용하면 합체가 가능합니다. 합체한 갓시그마는 천둥검을 꺼내 적을 일격에 제거하는 압도적인 파워를 자랑합니다. 이러한 합체 시스템은 완구로 재현이 가능한 수준으로는 가시그마가 최초였으며, 후에 많은 슈퍼로봇들이 이 설정을 차용하게 됩니다.
전투 장면에서 갓시그마는 다양한 기술을 선보입니다. 초저기압 발생 장치를 제거하고, 트리니티 시티의 오퍼레이터 리에르를 구하며, 적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누적된 데미지로 기지는 태평양 깊숙한 곳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블록 형태로 건조되어 있던 기지의 이동 작전 중 엘더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갓시그마는 신기술인 초보수용 포즈 어택을 선보입니다. 가간이 등장한 이후 괴수 로봇들은 비주얼부터 포스가 달랐고, 갓시그마를 힘으로 제압하며 날개까지 박살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투의 여파로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간 갓시그마를 위해 주리는 새로운 최첨단 미세한 하이테크놀로지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박사는 적의 특수 코팅을 뚫을 수 있는 시그마 브레스트를 개발합니다.
갓시그마 완구는 지금도 반다이의 초합금 시리즈로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으며, 다양한 시리즈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동양 비디오에서 수입할 당시 골드시그마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골라이온, 챌린저, 고드마스, 알베가스 등과 마찬가지로 20분짜리 분량을 40분이 넘도록 편집하는 마법을 보여주었습니다. 뱅크신이나 전투씬을 계속 반복해서 돌려 당시 시청자들은 비디오가 고장났나 싶었다는 회고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화를 빼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80년대 초반 작품치고는 충분히 봐줄 만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작품의 결말에서 가간과의 최종 전투가 펼쳐지고, 테라는 토시아가 공격할 수 있는 타이밍을 만들어주다 가간의 총에 맞아 쓰러집니다. 모든 싸움이 끝나고 이오를 재건하는 지구인들 속에서, 토시아는 갓시그마를 타고 테라가 남겨놓은 시공간 장치를 이용해 2300년 엘더성으로 떠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합니다. 미래로 떠나는 토시아를 비추며 우주대제 가시그마는 행복한 엔딩을 맞이합니다.
가시그마는 1980년 3월부터 1981년 2월까지 방영된 일본의 로봇 애니메이션으로, 국내에서는 1987년 12월 동양 비디오를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80년대 당시 흔치 않았던 미래와 현재를 오가며 벌어지는 사건들, 지구인이 무조건 선이 아니며 외계 세력 역시 악이 아닐 수 있다는 신선한 소재는 지금 다시 봐도 감명 깊은 부분이 많습니다. 충격적인 박사의 통수와 원래 적인 줄 알았던 테라가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전면에 등장하면서 몰입감은 끊을 수 없는 아침드라마 수준까지 높아집니다. 80년대 로봇 애니메이션 특유의 상상력과 드라마성을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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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얄리 아즈비디오 - 갓시그마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gaK45jnVfo